만해의 활불: 난생 처음 본 기적
-만해 시편
젊은 시절이었지.
만주 굴라재 고개 넘다
머리에 총 맞은 그날.
독립군 후보생들이었어.
작은 키에 까까머리 나를
일본 밀정으로 오인했다는
그들이 무릎 꿇고 비는 동안
나도 빌었지. 마취 없이 수술받는 나보다
칼 쥔 손 먼저 기도해 달라고.
김동삼이라고 했던가. 맞아.
그의 손이 자꾸 떨리는 걸 보았어.
뒷걸음치는 흰 소의 눈망울 같았지.
수술 마친 그가 낮게 외쳤어.
활불일세! 그러나 이후
나는 평생 고개 흔드는 체머리로 살아야 했지.
서대문형무소에서 그가 죽은 날
북정 고개 넘어 싣고 와서는
내 방에 모시고 오일장을 치렀지.
일생에 딱 한 번 그때 울었어.
그는 쉰아홉, 나는 쉰여덟.
광복 8년 전이었지.
지금 생각하니
죽어서 더 오래 산
그가 진짜 활불이었어.
고개가 흔들릴 때마다
한 땀씩 그가 내 머리에 새겨놓은
만주의 햇살이 그립기도 해.
그땐 젊어서
마취 없이도 세상 견딜 만했지.
하루하루가 활불이었어. 그때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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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좀 특별한 날입니다. 면구스럽지만, 저는 문학상을 수상한 날입니다. 작품은 만해 시편입니다. 이 시는 저의 젊은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만주 굴라재 고개를 넘다 총에 맞은 사건을 토대로 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독립군 후보생들로 인해 일본 밀정으로 오인되어 고통을 겪었습니다. 독립군 후보생들이 비에 무릎 꿇고 있는 동안, 저도 마취 없이 수술을 받으며 칼을 쥔 손이 먼저 기도해 달라고 빌었습니다.
난 김동삼이라고 불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제 손이 떨리는 모습을 본 이들은 흰 소의 눈망울과도 같다고 비유했습니다.
수술을 마친 뒤 저는 활불일세라고 낮게 외쳤습니다. 그러나 그 후로 평생 동안 고개를 흔드는 체머리로 살아야 했습니다.
한정된 일생 중에서도 그때만큼은 울었습니다. 그는 쉰아홉, 나는 쉰여덟이었습니다. 그 날은 광복 8년 전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죽어서 더 오래 살았던 그가 진짜로 활불이었습니다. 고개가 흔들릴 때마다, 그가 내 머리에 새긴 만주의 햇살을 그리워합니다.
그 당시에는 젊어서 마취 없이도 세상을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하루하루가 활불이었던 그 때의 우리는 힘들게 살아갔습니다.
오늘은 존경하는 유심 잡지의 창간자 한용운의 이름을 따서 유심작품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통해 그의 삶과 업적을 기리고자 합니다. 이 낮은 시상식에서 저의 작품이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한 효과적인 방법이 되기를 바랍니다.
젊은 시절이었지.
만주 굴라재 고개 넘다
머리에 총 맞은 그날.
독립군 후보생들이었어.
작은 키에 까까머리 나를
일본 밀정으로 오인했다는
그들이 무릎 꿇고 비는 동안
나도 빌었지. 마취 없이 수술받는 나보다
칼 쥔 손 먼저 기도해 달라고.
김동삼이라고 했던가. 맞아.
그의 손이 자꾸 떨리는 걸 보았어.
뒷걸음치는 흰 소의 눈망울 같았지.
수술 마친 그가 낮게 외쳤어.
활불일세! 그러나 이후
나는 평생 고개 흔드는 체머리로 살아야 했지.
서대문형무소에서 그가 죽은 날
북정 고개 넘어 싣고 와서는
내 방에 모시고 오일장을 치렀지.
일생에 딱 한 번 그때 울었어.
그는 쉰아홉, 나는 쉰여덟.
광복 8년 전이었지.
지금 생각하니
죽어서 더 오래 산
그가 진짜 활불이었어.
고개가 흔들릴 때마다
한 땀씩 그가 내 머리에 새겨놓은
만주의 햇살이 그립기도 해.
그땐 젊어서
마취 없이도 세상 견딜 만했지.
하루하루가 활불이었어. 그때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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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좀 특별한 날입니다. 면구스럽지만, 저는 문학상을 수상한 날입니다. 작품은 만해 시편입니다. 이 시는 저의 젊은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만주 굴라재 고개를 넘다 총에 맞은 사건을 토대로 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독립군 후보생들로 인해 일본 밀정으로 오인되어 고통을 겪었습니다. 독립군 후보생들이 비에 무릎 꿇고 있는 동안, 저도 마취 없이 수술을 받으며 칼을 쥔 손이 먼저 기도해 달라고 빌었습니다.
난 김동삼이라고 불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제 손이 떨리는 모습을 본 이들은 흰 소의 눈망울과도 같다고 비유했습니다.
수술을 마친 뒤 저는 활불일세라고 낮게 외쳤습니다. 그러나 그 후로 평생 동안 고개를 흔드는 체머리로 살아야 했습니다.
한정된 일생 중에서도 그때만큼은 울었습니다. 그는 쉰아홉, 나는 쉰여덟이었습니다. 그 날은 광복 8년 전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죽어서 더 오래 살았던 그가 진짜로 활불이었습니다. 고개가 흔들릴 때마다, 그가 내 머리에 새긴 만주의 햇살을 그리워합니다.
그 당시에는 젊어서 마취 없이도 세상을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하루하루가 활불이었던 그 때의 우리는 힘들게 살아갔습니다.
오늘은 존경하는 유심 잡지의 창간자 한용운의 이름을 따서 유심작품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통해 그의 삶과 업적을 기리고자 합니다. 이 낮은 시상식에서 저의 작품이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한 효과적인 방법이 되기를 바랍니다.
강원닷컴 이중선 시민기자
기사 작성일23-08-11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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