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그룹 전 회장 김석원 별세, 대한민국 재계의 빛나는 별이 사라지다
쌍용그룹을 한때 재계 6위까지 키웠던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이 지난 26일 별세했다. 향년 78세다.
김 전 회장은 30세에 그룹 회장에 취임해 1980년대 쌍용그룹의 전성기를 이끌었지만 1990년대 후반 쌍용자동차의 부진과 외환위기 사태로 그룹이 해체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그는 스포츠, 스카우트 운동, 교육, 장애인 복지, 문화 사업 등에서도 여러 업적을 남겼다. 재계 관계자는 "김 전 회장은 국가 경제를 위해 고생을 많이 했다"며 "기업가로서 잘 알려졌지만 미래 세대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다양한 분야에 큰 관심을 쏟았다"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은 1945년 대구 출생으로 서울고 졸업 후 미국 브랜다이스대 경제학과를 다니다가 1970년 귀국해 해병대에 자원입대했다. 1975년 부친인 성곡(省谷) 김성곤 쌍용그룹 창업주가 별세하며 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30세의 나이에 회사를 이끌게 된 김 전 회장은 공격적으로 사세를 키웠다. 소규모 비누공장인 삼공유지합자회사를 모체로 해 방직업과 시멘트업을 하던 쌍용그룹은 김 전 회장의 지휘 아래 중공업, 정유, 건설, 증권업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유학 시절 드라이빙스쿨을 수료했을 만큼 자동차 애호가인 김 전 회장은 1986년 자금난으로 어려움을 겪던 동아자동차까지 인수했다. 그 결과 쌍용그룹은 한때 국내 재계 순위 6위에 이름을 올렸다. 1995년 쌍용그룹 총자산은 10조9540억원에 달했다. 김 전 회장은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등을 지내며 재계를 주도했다. 쌍용차 부실·외환위기로 그룹 해체 동아차가 1988년 사명을 바꿔 탄생한 기업이...
김 전 회장은 30세에 그룹 회장에 취임해 1980년대 쌍용그룹의 전성기를 이끌었지만 1990년대 후반 쌍용자동차의 부진과 외환위기 사태로 그룹이 해체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그는 스포츠, 스카우트 운동, 교육, 장애인 복지, 문화 사업 등에서도 여러 업적을 남겼다. 재계 관계자는 "김 전 회장은 국가 경제를 위해 고생을 많이 했다"며 "기업가로서 잘 알려졌지만 미래 세대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다양한 분야에 큰 관심을 쏟았다"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은 1945년 대구 출생으로 서울고 졸업 후 미국 브랜다이스대 경제학과를 다니다가 1970년 귀국해 해병대에 자원입대했다. 1975년 부친인 성곡(省谷) 김성곤 쌍용그룹 창업주가 별세하며 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30세의 나이에 회사를 이끌게 된 김 전 회장은 공격적으로 사세를 키웠다. 소규모 비누공장인 삼공유지합자회사를 모체로 해 방직업과 시멘트업을 하던 쌍용그룹은 김 전 회장의 지휘 아래 중공업, 정유, 건설, 증권업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유학 시절 드라이빙스쿨을 수료했을 만큼 자동차 애호가인 김 전 회장은 1986년 자금난으로 어려움을 겪던 동아자동차까지 인수했다. 그 결과 쌍용그룹은 한때 국내 재계 순위 6위에 이름을 올렸다. 1995년 쌍용그룹 총자산은 10조9540억원에 달했다. 김 전 회장은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등을 지내며 재계를 주도했다. 쌍용차 부실·외환위기로 그룹 해체 동아차가 1988년 사명을 바꿔 탄생한 기업이...
강원닷컴 최형석 시민기자
기사 작성일23-09-01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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